어떤 아주머니께서 불서들을 항상 가까이 놓아두고 자주 읽어본다고 하시는데 때때로 신기한 것을 경험한다고 하신다. 때때로 자식 문제로 고민이 있다거나, 어떤 고민들로 답답해하면서 답을 찾다가 우연히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볼 때, 종종 마침 바로 거기에서 원하던 정확한 답변을 얻게 되곤 한다는 것이다. 마치 나를 위해 부처님께서 바로 그 쪽을 펼치게 해 주신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든 때때로 일어난다. 우리가 어떤 궁금한 것에 답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모처럼 켠 TV에서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다거나, 우연히 펼친 신문기사 속에서 그 답을 찾게 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공부하게 되었을 때, 평소에는 그것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가 갑자기 그런 내용들이 TV에서도, 책에서도, 혹은 주변에서도 동시적으로 그것을 듣게 되기도 한다. 이것을 칼 융은 동시성(同時性)으로 설명한다.
칼 융이 한 여인을 치료하는데, 그 여인이 하루는 풍뎅이 꿈을 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창문 밖에 풍뎅이가 날아온 것이다. 이러한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동시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더 깊은 차원, 감추어진 질서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피트는 이러한 융의 동시성이 ‘감추어진 질서’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본다. 겉에 드러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감추어진 질서가 있으며, 그 감추어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말하듯, 우리의 깊은 차원은 인드라망 그물코처럼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 연기적 연결성에서는 그 무엇도 우연이 없다. 더욱이 감추어진 질서라 불리우는, 우주법계의 근원적 질서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어떤 부족함도 없다. 부처님은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 내신 분이 아니라, 본래 충만했던 진리를 다만 발견하신 분이다. 사실, 진리는 온 우주에 충만하게 꽉 차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동시성이라는 방식으로 때때로 체험하곤 한다. 질문을 던지면 언제든 진리의 차원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뭣고’ 하고 화두를 던지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피트는 동시성을 자연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광대한 질서를 힐끗 엿볼 수 있게 하는 찰나적인 틈새라고 믿는다. 바로 그렇다. 이 겉에 드러난 몽환포영(夢幻泡影)의 허상의 세계 이면에 완전하고 충만한 진리가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의 아상과, 아집, 탐진치 삼독과 무명이 그것을 보는 것을 제한할 뿐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마음을 쉬고, 내면을 살펴본다면 그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힐끗 엿보게 될 수 도 있을뿐더러, 그 세계와의 깊은 연결을 이룰 수도 있으리라.
마음을 비우고 질문을 던지라. 세속적인 질문에서부터 진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해답을 법계에서는 항상 준비해 두고 있다. 물론 그 답은 다양한 방식으로 온다. 스님의 설법, 책이나 신문, 아이들의 말 한마디, TV, 아니면 문득 내면의 직관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음을 닫아걸지 않는다면, 활짝 열린 맑은 정신 안으로 진리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스승에게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제부터 우주법계의 진리 그 자체에 직접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직접적이며 본질적이다. 또한 나를 위해 준비해 둔 법계 본연의 계획에 입각해 무한한 자비와 지혜로써 내리는 답변이 올 것이다. 에둘러 가던 버릇을 돌이켜 내면으로, 법계로 직접 노크 해 보라.
운학사 주지 법상 스님
법보신문 1040호 [2010년 03월 16일 17:54]